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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람을 맹신한다. 아침기상은 기본이고 약먹을 시간등의 작은 이벤트까지 꼼꼼하게 설정한다.
나에게 해당 시간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알려주기 때문에 나같은 게으름뱅이에게는 꼭 필요하다.
하루는 내가 머신이 되있는거 같아 씁쓸해졌다. 오로지 효용성을 위해 태어난 사람같이 느껴졌다.
과감하게 알림을 끄고 살아보기로 했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알림이 멈추자 세상이 달라졌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백 번의 진동과 소리를 듣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울리는 메시지 알림, 회의 중 몰래 확인하는 카톡 창, 심지어 잠자기 직전까지 이어지는 각종 SNS의 푸시 알림. 우리는 알림이 곧 연결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스마트폰의 알림음은 어느새 일상의 배경음악이 되었고, 그 리듬에 맞춰 우리의 하루는 자동으로 박자를 타듯 흘러갔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스스로의 생각을 멈춘 이유가, 이 알림 때문이 아닐까라며 말이다.
우리가 운전을 할때 네이게이션에만 기계처럼 운전하듯이 말이다. 그 생각은 작지만 강렬했다.
알림 하나가 울릴 때마다 내 생각은 멈췄고, 집중은 흩어졌으며, 나의 하루는 누군가의 메시지에 의해 분절되었다.
메시지, 이메일, 좋아요, 댓글, 업데이트 소식. 이 모든 신호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수많은 알림의 수신자로만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했다. 슬로우 라이프, 알림 끄고 지내기. 단순히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용함이란 감정이 내 안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알림이 없는 시간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얼마나 불안할까, 혹은
어떤 자유를 느낄까. 그렇게 시작된 디지털 단식은 그것은 나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자, 세상과의 새로운 거리 두기였다.
손끝의 습관이 사라지자 불안이 찾아왔다
슬로우 라이프, 알림 끄고 지내기는 손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켜고, 아무런 표시가 없는 잠금화면을 확인하고, 다시 넣는 행동을 반복했다. 하루에도 열 번은 넘게 같은 행동을 했다. 초조했고 불안했다.
그동안 알림은 나를 끊임없이 자극했지만, 동시에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찾고 있다는 착각이 그 소리 속에 있었다.
그러나 알림이 사라지자 그 착각이 무너졌다. 나는 누구에게도 불리지 않았고, 어떤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향해 잠시 멈춘 듯 느껴졌다. 그 공백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아침 식탁에서도 휴대폰을 옆에 두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도 화면을 자꾸 눌러보았다. 그건 마치 입에 익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SNS를 켜보았지만, 무언가 달라 보였다. 새 게시물도, 화려한 피드도 더 이상 자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지쳐 있었다.
나는 그동안 콘텐츠를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보 중독자로 살아온 셈이었다.
그날 오후, 잠시 길을 걷고있는데, 갑자기 주머니 속이 허전했다. 휴대폰이 진동하지 않으니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오랜만에 사부작 거리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세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그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 조용한 방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조용함 속에서 비로소 들린 내 목소리
슬로우 라이프, 알림 끄고 지내기 둘째 날 아침은 전날보다 훨씬 평화로웠다. 알림이 꺼져 있음에도 조금은 덜 불안했다.
평소라면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들여다봤겠지만, 이날은 벽에 아들이 붙어있는 로봇 야광 스티커를 먼저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알림이 없으니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흘렀다. 녹차를 한잔 마시며 맛을 음미했다. 녹차가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하고 감탄을했다.
이날 나는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메모장에 쌓아두었던 아이디어를 꺼내 보았고, 오래된 글들을 읽었다.
거기엔 지금보다 훨씬 솔직한 내 목소리가 있었다. 심지어 와이프랑 연예시절 주고 받았던 편지를 정독하며 잊고 지냈던 감수성들이 도파민 터지듯이 올라왔다. 알림에 휘둘리던 시절에는 들리지 않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명확하게 들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정보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유는 비어 있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그건 죄악이었다.
그러나 진짜 창의력과 사색은 그 비어 있는 공간에서 피어난다. 물건을 버려야 새 물건을 살수 있듯이 말이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림이 울려서가 아니라, 진짜로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30분 남짓한 통화였지만, 그 시간은 오랜만에 진짜 대화였다. SNS 속의 좋아요 수천 개보다 그 한 통의 전화가 훨씬 따뜻했다.
저녁 무렵, 와이프랑 산책을 나섰다. 꽈배기 과자를 먹으며 고요해지는 그 길을 걸었다. 인생이 풍요로워지는거 같았다.세상은 원래 이렇게 풍부했는데, 나는 알림의 소리에 가려 그것을 잊고 살았다. 고요함은 진짜 내 소리를 들을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디지털의 소음 대신 나의 시간을 되찾다
시간이 지날수로 나는 거의 완전히 새로운 리듬에 익숙해졌다.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알림이 없는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유연했다. 아침에는 평소보다 집중이 잘 되었고, 글을 쓸 때 몰입의 깊이가 달랐다.
알림이 없는 시간은 마치 일본 자객 닌자 같았다. 매 순간 반응하지 않아도 되니, 내 사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점심시간에 회시 동료들과 카페에 들렀다. 그날은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가득했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화면이 번쩍일 때마다 표정이 바뀌었다.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찡그렸다.
그 작은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장면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들 중 하나였다.
슬로우 라이프, 알림 끄고 지내기를 통해 나는 눈앞의 커피 향과 햇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시간의 밀도가 달라진 것이다.
글을 썼다. 오랜만에 생각의 결이 길게 이어졌다. 한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으면서, 나는 생각의 주인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결심했다. 모든 알림을 다시 켜지 않기로. 대신 정말 필요한 몇 가지 항목은 제외하고 알람을 모두 삭제했다.
이번 이벤트는 내게 단순한 평온을 넘어, 선택의 힘을 가르쳐주었다.
알림 없는 삶이 가르쳐준 것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것이다. 나는 현대인이고 나에게 누군가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경험은 짧았지만, 내 삶의 구조를 바꿔 놓았다.
그전까지 나는 항상 즉각 반응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다.
슬로우 라이프, 알림 끄고 지내기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의 리듬을 되찾았고, 집중력의 회복과 함께 마음의 여백이 생겼다.
디지털의 소음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시간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색의 능력, 감정의 밀도, 그리고 인간적인 리듬이다.
알림을 끄는 것은 결국 삶의 질을 낮추는 행위였다. 이제 나는 하루에 한 번만 SNS를 확인하고, 이메일은 정해진 시간에만 본다.
그 대신, 책을 읽고, 생각을 기록하고,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소란스럽지만, 내 세상은 이제 조용하다.
나는 더 이상 매 순간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인가 모르게 훌륭한 사람이 되가고 있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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